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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정겨운 감나무골엔 75년째 해로 중인 부부로 박철순 할아버지와 김옥윤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에서 8남매를 키우고 이제는 부부만이 고향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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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감나무가 많아 감나무골 조용한 마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집에 단정하게 펼쳐진 채마밭 주인은 75년째 해로 중인 박철순(96) 할아버지와 김옥윤(94) 할머니입니다.
스물한 살, 열아홉에 부모님이 맺어준 대로 손 한 번 잡아보지 않고 부부의 연을 맺었고 지금은 느릿느릿, 이른 아침부터 밭을 돌며 시작되는 부부의 일상입니다.
가을볕 내리는 마당에는 자식들에게 나눠줄 참깨가 바짝 일광욕 중이고, 다리가 불편한 아내를 위해서 할아버지가 박아둔 말뚝을 따라 텃밭에 가면 콩, 가지, 고구마 등이 주렁주렁입니다.
다 자식들 가는 손에 들려 보낼 것들로 매일 들여다보고, 풀을 뽑고, 정성을 들이고 대문 앞을 지키고 있는 건 낡은 오토바이로 박철순 할아버지 구순에 아들이 사준, 애마입니다.
20킬로그램 소금 자루를 척척 이웃집까지 배달도 해주는 짱짱한 박철순 할아버지는 딸이 오는 날에는 기꺼이 버스 정거장까지 마중 나갑니다.
버스에서 내린 칠십이 된 딸이 챙겨온 반찬거리를 싣고, ‘탈탈탈’ 앞서가는 아버지의 오토바이 뒷모습만 봐도 가슴이 뭉클하고 정겨운 고향집으로 들어가면 백발의 엄마가 꽃처럼 웃고 기다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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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 열아홉에 결혼해 딸 하나를 낳고 군대에 간 할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로 군에 있던 시절만 5년, 시어머니와 억세게 살며 남편을 기다렸고, 그저 살아 돌아온 게 고마웠답니다.
슬하에 딸 넷에 아들 넷, 논의 물을 빼다 경운기 팬벨트에 손가락 마디를 잃기도 했고 밥그릇 같은 논에서 평생을 농부로 살았고 지게에 나무를 지고 팔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새마을 지도자로 마을 일이라면, 솔선수범했다는 할아버지는 구순이 훌쩍 넘은 지금도, 매월 참전용사 모임에 나가시니다.
할머니는 시부모님에 시동생, 8남매까지 딸린 식구가 많아 가마솥을 세 개나 걸었고 베틀 짜고 돈을 벌기위해 마을 길쌈 거리 다 받아다 밤새 짜던 할머니는 지금은 어깨 연골이 다 닳아버렸습니다.
나이 드니, 곁에 있는 남편만큼 소중한 이가 없다는데 할머니를 위해 밥때가 되면 수저를 놓고 물병도 따주고, “여봐요” 부르면 바로 달려가는 할아버지는 할머니 다니는 길마다 튼튼한 말뚝을 박아주니, 그렇게 의지가 되고 좋답니다.
말뚝과 지팡이를 짚고 밭으로 향하는 부부는 느릿느릿 걸음으로 힘을 내서 밭을 가는지, 밭에 가면 힘이 나는 건지 꼼지락꼼지락, 자식 보듯 텃밭을 가꾸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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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남매가 모두 출가해 부부만 남은 고향집에 낮이고 밤이고 울리는 전화벨 소리로 아들, 딸들이 돌아가며 안부 전화를 걸어옵니다.
서울 사는 셋째 미자(69) 씨는 8남매 중 가장 자주 오는 딸로 이틀이 멀다 하고 오는데 서울 집보다 고향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시집가기 전까지 부모님과 농사짓던 착한 딸은 삼시 세끼 챙겨드리고, 나들이 모셔가고, 팔 아픈 엄마도 개운하게 목욕시켜 드리며 부모님 좋아하시는 거라면 뭐든 합니다.
얼마 전 첫 손주를 봤다는 여섯째 아들 상준(63) 씨는 벌초 가시는 백발 아버지 곁을 보필하고, 아버지께 갓 태어난 손주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도 드립니다.
고향집에 찾아온 나이 지긋한 부부, 공주에 사는 큰딸과 큰사위로 6.25 전쟁 때 전사한 형님이 남긴 유일한 혈육, 네 살 난 조카를 철순 할아버지와 옥윤 할머니는 호적에 올리고 큰딸로 품었다습니다.
다 귀하고 아까운 자식이지만, 막내아들은 다시 살아온 애틋한 아들 15년 전, 생사의 기로에서, 조카에게 간을 이식받았는데 내년이 환갑이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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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째 맞는 부부의 가을, 이맘때면 자식들은 더 자주 드나드는데 보기만 해도 애틋한 막내아들 차를 타고 방앗간에 가서 1년 농사지어 둔 들깨로 고소한 들기름을 짜오는 할머니입니다.
한편, 부모님 생각에 이틀이 멀다 하고 서울서 오는 미자 씨는 가을에는 아예 짐을 싸 들고 와
10여 년 전까지 아버지가 다니셨다는 밤 산에 올라 밤 줍는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그 바지런이 꼭 부모님을 닮은 딸이 일 마치고 올 때까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또 대문 밖만 바라보며 기다리십니다.
며칠 후, 조용하던 고향집이 들썩이고 추석 전 벌초를 위해 집안의 남자들이 모여드는데, 큰아들부터 어린 증손주에, 나이 지긋한 조카들까지 고향집 마당이 북적댑니다.
그리고 15년 전, 스무 살 어린 나이에 막내 삼촌을 살린 귀한 손자로 급성 간염으로 아들이 조카의 간을 이식받던 날 귀한 아들과 손자, 둘 다 잃는 줄 알았다는 할머니입니다.
그리고 그때를 잊지 못하는 또 한 사람 스무 살 아들이 그런 결정을 내렸을 때, 큰며느리의 마음은 얼마나 철렁했을지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릿저릿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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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인생은 걸을 땐 가시밭길이더니, 돌아보면 꽃길이라 했던가 어느덧 4대를 이루고 부부의 생은 아름드리 나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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